Snowy Fairytale

손가락 새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에 눈을 찡그린 것도 잠시, 그 틈을 비집고 보이는 쪽빛 머리칼에 시연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연, 뭐해? 좁은 틈새로 보이던 머리카락이 아이의 고갯짓을 따라 부드럽게 흩어져 내렸다. 으응, 아니 별거 아냐. 실없이 웃는 시연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는 다시 한번 갸웃하고선 조심스레 그녀의 곁에 걸터앉았다.

 

잘 잤어?”

, 오랜만에.”

 

잘 잤다니 다행이야. 마치 대단한 일이라도 한 양 제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시연은 살짝 민망해졌다. 그러고 보니 최근엔 아이가 해주는 충고의 반은 흘려들었지.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새삼스레 깨달은 사실에 시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 오늘은 그냥 푹 쉴까?”

? 원래 그럴 계획 아니었어?”

 

오늘은 둘 다 오프이니 당연히 집에서 여유롭게 보낼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아이의 말에 시연의 눈썹이 느슨하게 올라갔다.

 

그냥 여기서 쉬자.”

 

영문도 모른 채 다시 이불 속으로 유배당한 시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평소였다면 규칙적인 식사의 중요성을 읊어줬을 텐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아이가 가볍게 말을 덧붙였다. 많이 피곤하잖아. 아직 이르니까 조금 더 자.

 

그제야 시연은 아직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 그렇구나. 아이가 이르다면 조금 더 자도 괜찮겠지. 시연은 아직 찌뿌둥한 몸으로 기지개를 켜고선 다시 풀썩 누웠다.

 

아이도 여기 누울래?”

 

시연은 나른하게 이불을 껴안고선 제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같이 쉬자, ? 잠에서 깬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인지 평소에 비해 느릿하고도 어리광 섞인 목소리였다. 아이는 동의의 표시 대신 자연스레 시연의 옆자리에 자리 잡았다. 그와 동시에 시연은 기다렸다는 듯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놀랄 틈도 없이 품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온기에 아이는 나지막이 시연의 등을 토닥였다.

 

규칙적으로 등을 다독이는 소리와 때때로 스치는 푸른 목소리가 기분 좋게 시연의 귓가를 울렸다. 조금 전까지 손가락 새로 넘실거리던 새벽의 바다에 잠긴 시연은 그 향을 만끽하려는 듯 살며시 눈을 감았다.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금세 다시 잠이 든 시연의 모습에 아이는 느릿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이의 손가락 사이로 눈을 깜빡일 시간조차 아쉽게 느껴지는 찬란한 아침 햇살이 보였다. 잘 자, 시연. 조금 이따 보자. 10시 반을 가리키고 있던 아이의 휴대폰 화면이 조용히 꺼졌다.

 

 

 

 

 


❥ MAIN PHOTO ⓒ 초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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