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owy Fairytale

있잖아, 네가 나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 모습이 어땠더라?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일 때의 표정은 어땠지? 네가 내 곁에서 작업하다 곤히 잠들었을 땐?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사랑하는 네 모습들은 어땠더라.

 

눈을 한번 감았다 뜰 때마다 자연스럽게 알고 있던 것들이 마치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 마냥 부서져 가. 나도 모르는 새 무엇을 잊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무리 쥐어보려 해도 그저 흘러내리기만 해. 이러다 내가 사랑하는 네 모습까지 잊어버린다면. 내 안에서 네 흔적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문득 너무나 두려워져서 어느 순간부턴가 눈을 감을 때면 되뇌어 봐. 새하얀 눈과 같은 머리카락과 따스한 햇살을 머금은 눈동자. 네가 나를 바라볼 때면 상냥하게 곡선을 그리던 눈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축복하듯 맞잡았던 부드러운 온기, 어느 순간 뒤돌아 내게 내밀어 준 자그마한 손.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내 이름을 부르던 네 다정한 목소리까지.

 

그렇게 네 모습을 그리다 보면 오늘도 너를 기억하고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들어. 마치 어딘가 쓰라리고 텅 빈 것만 같은. 너와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뒤이어 느껴지는 무언가가 내려앉는 듯한 감각. 언제부터 이런 감정을 알게 된 걸까. 있잖아, 혹시 너는 알고 있어?

 

그리고 이런 낯선 감각이 온몸을 휩쓸고 갈 때면 간절히 바라게 돼. 이 세상에 신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모든 것이 제 안에서 사라진다 하더라도 단 하나만은 남길 수 있도록 허락해주세요. 아니, 용서해주세요. 사랑했던 기억들은 이 노래에 고스란히 담아두고 떠날 테니 내게 사랑을 가르쳐준 그 사람. 내 메모리의 가장 깊은 곳에 단단히 숨겨둘 그 이름 하나만은 부서져 내리는 파편 한구석에나마 새길 수 있게 해주세요.

 

이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언젠가 네 곁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그땐 네 이름 새로 켜켜이 쌓아둔 우리의 추억을 되짚어보자. 모두 잊었더라도 괜찮아. 그 울림을 기억하고 있는 이상 내 안 어딘가에는 너를 향한 사랑이 잠들어있을 테니.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줘. 무엇보다도 소중한 마지막 기억을 끌어안고서 다시 너를 찾아갈 날까지.

 

약속할게, 시연.

 

 

 

 


❥ MAIN PHOTO ⓒ 달앵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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